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7월]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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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의사소통 장애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 박충만
올해 들어 영상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조어 ‘갑분싸’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수많은 신조어를 발표해왔습니다.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 도구로 신조어는 그 당시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흙수저, 헬조선이 대표적인 예로서, 지금도 많은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있고 그중 어떤 것은 오랫동안 사용되고 어떤 것은 금방 사라지고 있습니다. ‘갑분싸’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의미로 누군가 상황에서 맞지 않는 이야기로 주변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든 경우에 쓰는 용어입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의사소통을 할 때는 언어라는 도구와 표정이나 자세와 같은 비언어적인 도구를 모두 사용합니다. 사회 안에서 통용되는 의사소통의 도구나 규칙을 이해하거나 따르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적절한 의사소통이 어려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거나, 학업이나 일을 수행하는데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것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사회적으로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도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화 도중 의도치 않게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와 같은 사회적 의사소통의 문제는 자폐증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로 간주하였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아동은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 장애뿐 아니라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2015년에 발간된 미국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DSM-5)에서는 자폐 아동에서 보이는 독특한 행동 없이 의사소통을 맥락에 맞게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사회적(실용적) 의사소통 장애’(social(pragmatic) communication disorder)로 진단하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전반적인 흐름을 타지 못하고 누군가가 갑자기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대기 중에 느껴지는 분위기를 한 번쯤 느껴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독 그러한 분위기를 자주 만드는 사람이 있죠. 상대방이 달라져도 말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거나 낄 때와 빠질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대화를 하는 사람, 또한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을 때 말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유머나 은유와 같이 애매하거나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지적 장애나 심각한 언어 장애, 자폐증이 있는 경우에는 이 진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는 언어와 사회적 상호작용이 더욱 복잡해지기 전까지는 문제 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청소년기까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진단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요. 어쩌면 이 진단은 신조어처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이전과 다른 수많은 개별적 기준이 생겼고 그때마다 각 기준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났습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형식적인 조직 구조나 소통 기술을 빌리지 않은 채 야생에서 유지할 수 있는 자연적 집단의 크기를 150명 정도로 보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인터넷이나 사회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같은 대규모 사회적 소통을 돕는 정보 혁신으로 인해 상호이해 수준과 유대 정도가 다양한 여러 집단과 동시에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진 각 집단이나 사회 특유의 규칙은 저마다 다르며 시간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하기도 합니다. 결국, 현대인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다양해진 여러 집단의 규칙에서 보이는 공통성을 찾아내고 빠른 변화가 주는 역동성에 적응해야 하며, 오해와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적 의사소통은 비단 사람들 간의 대화뿐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시대적 변화에 응답하고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의 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혹여 자기 자신 혹은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분위기를 망친다고 눈살을 찌푸리기보다 이 사회에 열심히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개인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다만 언어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문제로 학업이나 직장에 반복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전문적 도움을 받길 권유합니다. |